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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조회 수 268 추천 수 0 2016.03.30 09:00:52

성경 : 마태복음 28 : 1-10

 

유명한 종교 개혁자인 마틴루터가 개혁의 도상에서 여러 가지 그 장애에 부딪혀 아주 좌절해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침식을 전폐하고 병상에 누워있던 어느날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루터가 누워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터가 깜짝 놀라서 여보, 누가 죽었오?’ ‘,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 무슨 말이요?’

 

이때 루터의 아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시 다면 당신이 그렇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리가 있겠어요?’

이 말이 루터를 깨우쳤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벌떡 일어나 그는 종교개혁의 과제를 다시 추진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고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이 부활주일에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 길의 두 제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그들의 옛날 직업인 어부의 생업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러는 예수님의 제자인 것이 알려질까봐 그들이 묵고 있었던 집의 문을 꽁꽁 걸어 닫고 숨어있었습니다.

다만 베드로와 요한,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다른 마리아, 여성 사람만이 제대로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안쓰러워 그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새벽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접합니다. 주 부활의 소식을 접하고 살아계신 주님을 친히 만나는 놀라운 경험,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본문의 5-6절입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래서 여인들은 그가 누우셨던 장소를 확인합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과연 그는 다시 사셨습니다. 평소에 살아계실 때 그가 예언하신 그대로, 내가 죽음에서 살아날 것이라는 예언 그대로 살아난 현장을 확인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였을까요? 이때 바로 그들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이 놀라운 사실 앞에 믿음의 여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이 첫 부활의 아침에 이 여인들이 보여준 반응이야말로 오늘 살아계신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의 한 모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분이 참으로 다시 사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정말 기뻐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여인들이 보여준 반응을 오늘 본문의 8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여기 두개의 매우 대조적인 단어를 보십시오.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서움, 다른 말로하면 두려움인데요 두려움과 커다란 기쁨, 이 두 가지는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때로 역설적으로 우리가 너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경험했을 때 두려움과 큰 기쁨이 함께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성서 학자들은 이 기쁨을 전율할만한 기쁨이었다고 말합니다. 전율할만한 기쁨. 이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해답을 발견한 그런 기쁨이였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생의 근본적이고 그리고 궁극적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죽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죽음에서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지배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죽음이 인류의 왕 노릇하고 있다라고 말 합니다 인류의 왕 노릇 한다, 로마서에 나오는 표현이지요? 다시 말하면 죽음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지배에 종속되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죽습니다. 아무도 이 죽음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죽음에 대한 해답이 있을까요?

 

세상은 이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철학은 이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발전되는 인류의 생명과학도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수명의 길이를 조금 연장시키는 것을 연구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시간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이것은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해답을 갖고 있습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감격적인 사실일까요?

우리는 이 죽음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갖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어찌 흥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자신의 부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믿는 자는 너희도 살리라! 그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에 보증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그가 선포했던 이 말씀은 인류역사를 뒤집을만한 놀라운 선언입니다. 아무도 이런 선언을 한 사람은 과거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 당장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약을 발명했다고 하십시다. 흥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통 흥분할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소리칠 것입니다. 여기 암을 정복한 약이 발명되었다고,

그러나 암은 죽음을 치료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까지 시간을 조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으로서의 부활을 지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리고 여러분과 저의 부활이 분명히 보장된 사실이라면 우리는 얼만큼 기뻐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얼만큼 흥분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또한 단지 우리가 죽음이후에 부활이 약속되었다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시든 부활의 능력으로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오늘 하루하루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말씀 드린 것처럼 죽음의 힘일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하시는 여러분 죽음의 힘보다 더 무서운 힘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패배 시킨 부활의 힘인 것입니다.

 

그 부활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던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리고 부활의 주님이 함께 한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 부딪히는 삶의 시련이 어렵고 힘겨운 것이라 해도 왜 절망하십니까?

왜 좌절하십니까?

 

우리는 참으로 이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놀라운 소망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 안에 역사할 수 있는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삶의 시련을 넉넉히 넘어설 수 있는 흥분과 기쁨을 가지고 우리는 삶의 장 앞에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두 번째로 우리는 경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여인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이었어요.

 

본문의 9절입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천사가 부활의 메세지를 선포했을 뿐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이 거기에 오셨어요. 평안하냐? 얼마나 놀랬겠어요?

살아계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는 그 순간 여인들은 엎드립니다. 주님의 발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경배합니다.

왜 일까요?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경배의 대상일 수가 없어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 입니다. 성경이 철저하게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 홀로 살아계시고 그분 홀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여인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뭘 나타내어주고 있어요?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 경배를 만류하지 않으셨고 그 경배를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사도행전에 아주 흥미 있는 두개의 에피소드가 기록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시면 고넬료라는 이방인 장교였는데 그가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 받습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이방인을 상대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베드로를 보내셔서 그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그가 복음을 통해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고넬료는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앞에 엎드려서 베드로를 경배하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베드로가 깜작 놀라 만류하면서 나도 사람이라고, 나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요. 사도행전을 계속 읽어보시면 비슷한 또 사건이 일어나지요 사도행전 14장에 보시면 바울이 루스드라 라는 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납니다. 이 광경을 보자 루스드라의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 바울과 함께 있든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을 보면서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 앞에서 제사를 하려고 그랬어요.

이때 바울이 보여준 반응이 뭐에요? 그래 나는 신이야! 그랬습니까? 옷을 찢습니다. 바울이 막 옷을 찢으면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우리는 그대들과 성정이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은 경배의 대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인들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뭘까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사기꾼이든가 하나님이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금세기의 최대의 크리스챤 평신도였던 옥스포드의 C S루이스가 물었던 질문이에요.

그분은 사기꾼이든가 하나님이든가 둘 중에 하나라고, 그분이 사기꾼일 수가 없다면 그는 하나님입니다. He's God !

 

그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고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인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부활 사건을 가르쳐서 이것이야말로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의 증명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4절에 보시면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성령에 의해서 그 역사에서 부활하신 그 사건이야말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가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신 신성의 증명의 사건이라고 바울사도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진실로 여러분과 저에게 오늘 이 시간도 예배를, 그리고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경배하는 사람마다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를 경배 속에서 체험하는 사람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길 줄로 믿습니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단순히 예배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순서에만 참여하는 것,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에 한 시간 동안을 머물러있고도 전혀 예배하지 않는 자로 이 자리를 나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이 없다면 말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령으로 내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함으로써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당당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길 원합니다.

저는 그 사람이 진정한 예배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비록 이 자리뿐만 아니라 교회 밖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는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는 증거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을 체험한 여인들이 보여주었든 반응 이였습니다.

10절 마지막 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너희는 갈릴리로 가라.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살아난 소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다음 11절에 보시면 "여자들이 갈제" 순종입니다.

주께서 가라고 말씀하셨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벌써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과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8절에 보시면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전하려고 빨리 떠납니다. 어떻게 침묵할 수가 있겠어요.

 

여러분 정말 암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먹고 이웃집 사람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가만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픈 사람을 찾아가 암 치료제가 여기 있다고 흥분해서 소리칠 것입니다.

이렇게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본문을 묵상할 때 항상 제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있었어요. 부활하신 주님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여인들에게 나타났거든요.

저는 남성으로서 항상 궁금한 것이 베드로는 야고보는 요한은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었는지,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먼저 나타났을까? 오랫동안 제가 가지고 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여성에게 나타난 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얘기 듣고 저에게 여성 여러분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한 얘기입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성들에게 나타났는가? 그분 대답이 여자들이 입이 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식이 빨리 퍼지는데 여자가 효과적이다.”라는 것이에요,

 

미국에도 비슷한 조크가 있어요.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가 뭐냐? BMW 랍니다. BMW란 것은 Big mouth woman의 약자입니다. 입이 큰 여자들이다 이 말입니다.

 

어쨌든 이 여인들을 통해서 첫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는 책임이요 특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증된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면 어찌 잠잠할 수가 있겠습니까?

 

열왕기 하 7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옛날 사마리아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시리아에서 쳐들어온 아람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자식들을 먹는 처참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성문 곁에 있던 나환자 몇 사람이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밤중에 적진으로 가보았어요. 뭐 붙들리면 죽지 뭐 하고서, 앉아있어도 죽어도 마찬가지니까, 적진에 들어갔더니 적진들은 다 퇴각을 해버렸어요.

 

그리고 식량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이 굶었던 그들은 정신없이 먹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먹다가 그들에게 다가왔든 그들에게 일어났든 놀라운 자각하나가 있어요. 이 자각을 그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오늘날은 기쁜 소식이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이어늘 우리는 잠잠하고 있도다. 이 아름다운소식이, 식량이 여기 있다는 좋은 소식이 있는 날 이어 늘 우리는 잠잠하고 있다. 우리가 내일아침까지 침묵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이 죽어간다면 이것은 우리가 벌을 받을 일이다.

가자!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D. T 나이프 라는 유명한 세계적인 선교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전도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전도란 뭐냐? 전도란 것은 배고팠든 거지가 양식을 발견한 후에 그리고 그 양식을 취하면서 다른 배고픈 거지들에게 가서 여기에 빵이 있다고 전하는 것이다.

얼마나 쉬운 전도에 대한 증언입니까?

목이 말라 죽어가든 사람들이 생수를 발견하고 목을 적신 후에 목말라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외치는 거에요.

여기에 생수가 있다고, 여기에 샘물이 있다고, 그것이 전도가 아닙니까? 죽어가든 사람이 의사를 만나서 자기의 병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치유가 있다고, 여기에 당신의 살길이 있다고, 그것이 전도가 아닙니까?

 

용서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그 마음이 어둡고 마음이 감옥이고 인생의 길이 처참한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용서를 체험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용서, 하나님의 완벽한 용서, 주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그 흘린 피로 나를 죄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그 용서를 체험한 사람들이 아직 용서 받지 못한 다른 죄인들에게 찾아가서 여기에 용서가 있다고, 그리스도 안에 죄 사함이 있다고,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고 전하는 것, 여러분 이것이 전도의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그것을 여러분과 제가 참으로 믿는다면 오늘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정말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진실로 이 기쁨 안에서 이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삶의 현실은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마다 살아계신 주님, 그리고 거룩하신 역사를 지배하신 그분 앞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구원이라고 소망이라고 우리는 전도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였 던 여인들, 그들은 평범한 여자들이였어요. 평범한 여자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첫 번째 평신도 선교사들이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세상은 빛을, 세상은 여명을, 세상은 새로운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면 오늘21세기를 위해서 누가 이 부활의 소식을 전하겠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할까요?

 

우리가 여기서부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부터 우리의 직장에서부터 우리의 삶의 장에서부터 우리의 동네에서부터 우리가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여기서부터 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할까요? 지금 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시겠습니까?

 

여기 부활하신 주님 앞에 우리가 엄숙하게 고백해야 할 또 하나의 책임, 제가 전하겠습니다. 생명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라면 더욱이 순종하겠습니다. 여기 빠른 걸음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든 여인들을 통해서 1세기의 세상이 새로운 새벽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면

오늘 21세기는 여러분과 저의 증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 주님의 부르심 앞에, 보내심 앞에 응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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