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폴리 피플>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3월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유관순 열사와 만세삼창. 그리고 일제의 만행과 독립, 독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는 애국가를 연상한다. 삼천리 화려강산 무궁화. 그러나 작심컨대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는 알아도 8월 8일 무궁화의 날을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겨레의 꽃 무궁화가 아직까지는 법률적으로 대한민국의 공식 국화(國花)로 지정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3월이 더욱 서글퍼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과연 그럴까!
“무궁화 삼천리는 고사하고 무궁화 십리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 주변은 둘째치고라도 국가의 심장부인 여의도 길이나 청와대 주변. 남산에 올라보면 북쪽으로는 청와대 서쪽으로는 국회의사당 남서쪽으로는 국립현충원이 보이는데, 최소한 상징적으로라도 그런 곳에 무궁화 길을 조성하면 누가 뭐라고 합니까! 도대체 이 정부가 민족의 꽃 무궁화에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궁화 보급에 평생을 올인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양천규 회장
올해로 20년째, “무궁화국민대축제”로 민족혼 일구는 (사)대한민국무궁화선양회
“무궁화를 차라리 애국가에 등장이나 시키지 말지.”
지극이 당연한 지적이다. 국가의 예산지원은 고사하고, 겨레의 꽃 무궁화에 관심이나 좀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는 (사)대한민국무궁화선양회 양천규회장은 올해로 20년째, 순수 자비를 들여 해마다 8월에 “무궁화국민대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사실 무궁화는 국민들에게 관행으로만 국화(國花)로 인식될 뿐, 실제 법률로는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기법'에 의해 제작ㆍ게양ㆍ관리 등의 사항이 규정돼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나라의 꽃 무궁화에 대해서는 소위 음모론까지 있을 정도로 그 수난의 역사가 깊다.
다소 화두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탄압이 있었다.
무궁화는 식민지 시절 일제의 한국인 말살정책과 그 맥을 같이하며 치욕을 겪어왔다. “무궁화가 몸에 닿으면 부스럼이 생긴다." "무궁화를 보면 눈에 핏발이서서 죽거나 실명한다.” "진딧물이 무성하여 더럽고 역겨운 꽃이다." 라는 등 일제의 허구 맹랑한 악설에 의해 시대적인 아픔을 겪기도 했다.
“사실 무궁화에 달라붙는 진딧물은 인체에 전혀 해가 없고, 오히려 해충을 없애주기도 하지요. 진딧물 또한 무궁화의 스스로의 자정작용에 의해 사라지기도 하구요.”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무궁화는 민족의 아픔과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겨레의 꽃으로, 몇 년 전, 모 정당에 의해 대한민국 국화를 무궁화로 지정하고 무궁화의 종류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내용으로 해서 국회에 '대한민국 국화에 관한 법률안' 이 제정 상정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무관심과 국회의 회기만료로 인해 유야무야 상정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우리민족의 혼이 깃든 무궁화는 비록 원산지에 대해서는 그 설이 분분하나, 옛 문헌에 의하더라도 우리민족의 시원(始原)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상고시대 지리와 풍속 등을 기록한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 라는 구절이 있고,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 라는 구절도 있다.
또한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에 당대의 문장가 최치원을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보내 국서를 전달했는데, 그 국서에도 근화향(槿花鄕)이라는 구절이 있다. 즉 군자국은 한반도인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었고, 최치원의 문집에도 무궁화에 대한 초안이 근화(槿花) 즉 무궁화라고 수록되어 있다. 이후 숱한 고난의 역사를 견디며, 해방 후, 애국가를 만들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마침내 겨레의 꽃 무궁화로 상징되어 왔다.
8월 8일, 1만 어린이들의 서명이 무궁화의 날 제정을 도왔다
정부의 무궁화 보급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 도대체 한심한 간 큰 정부
“정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국민들에게 무궁화 보급을 위해 정부의 예산지원은 바라지도 않을 테니, 꽃길 조성과 꽃동산 조성을 위해 국가에서 장소만이라도 제공해 달라고 수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정부는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했지요.”
그 자신 한때는 지자체 산하 체육단체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무궁화 보급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무관심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공항에서 영종도를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길가에 무궁화로 가로수를 정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은 우리가 댈 테니 장소만이라도 제공해 달라는 것인데도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어요!”
올해로 20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8월 무궁화의 날을 전후하여 무궁화국민대축제를 주관하고 있는 양 회장은 나라의 꽃 무궁화를 국민들에게 보급하고, 무궁화 꽃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순수 자비와 회원들의 십시일반 참여로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켜 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겨레의 꽃 무궁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무궁화 선양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을 일깨우고 국민윤리운동을 펼침으로서 국민화합을 선두에서 이끌고자 무궁화 헌장을 제정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8애(愛)운동(국토. 국기. 국가. 국화. 국어. 국민. 국산품. 국세)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으며, 조국과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민족의 웅비에 그 힘을 보태고 있기도 하다.
“일본의 국화로 상징되는 벚꽃 축제는 진해의 군항제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인 무궁화축제에는 정부의 예산지원은커녕 국민들로부터도 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양 회장은 겨레의 꽃 무궁화를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통해 화합의 국민한마당 대축제를 범정부가 이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관심과 외면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무사 안일한 태도를 질타하기도 했다.
20년째, 정부의 예산지원 없이 행사비용의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
무궁화 보급을 위한 수익사업, 정부시설 구내매점 등 위탁경영 필요
양천규회장 부부
한편 올해로 6회째 맞이하는 무궁화의 날(8월 8일)은 지난 2007년 양 회장과 뜻을 같이하는 단체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어린이들이 직접 거리서명을 다니며, 범국민적인 운동을 펼친 결과 마침내 국회의 승인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기념일을 8월 8일로 제정한 이유 또한 88년 올림픽 이후, 급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징하고, 일제치하로부터 해방된 8월 15일이 들어있는 8월을 상징하며, 무궁화는 8월에 그 개화기가 절정을 달해 그 상징을 의미하는 뜻에서 8월 8일로 정했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꽃 무궁화는 세계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민족의 시원(始原)인 5000년이란 시간을 함께 해 왔으며, 하나의 생물로서 민족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것은 우리 무궁화가 유일하다고 한다. 사실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하다.
고조선의 건국 이전인 신시시대에 무궁화는 환나라의 꽃인 '환화(桓花)'로 불리며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그리고 고조선시대에는 훈화(薰華) 또는 천지화(天指花). 그리고 근수(槿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 민족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 더구나 이 시대에 무궁화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神壇) 둘레에 많이 심어져 신성시되기도 했다.
특히 단군은 무궁화를 뜰아래 심어 정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신라 화랑의 국자랑(國子郞)들은 무궁화를 머리에 꽂고 다니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의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의 기록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한편, 나라를 강탈한 것도 모자라 우리의 정신까지 말살하려 했던 일제는 무궁화를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정신으로 여겨지고 해외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무궁화를 우리의 표상으로 내세우자 전국에 있던 무궁화를 모두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자기네 꽃인 벚꽃을 심었던 것이다.
“나라의 꽃 무궁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궁화 보급 사업은 전시성 행사에 불과한 수준이며, 산림청의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이루어지는 무궁화에 대한 연구도 1998년까지 4명이었던 임업연구사가 현재 단 1명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더구나 무궁화 연구에 대한 별도의 예산도 없이 조경수 개발을 위한 일부 예산만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무궁화의 신품종을 육성.개발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보급의 기반이 되는 무궁화 연구를 위해 경기 이천에 무궁화 꽃동산 조성도 계획하고 있다는 양 회장은 무궁화가 우리민족을 대표하는 겨레의 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국민은 단 1%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무궁화가 언제 어떻게 나라의 꽃으로 정해졌는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며, 나라꽃이면서도 나라꽃이라는 정확한 근거가 없는 무궁화에 법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무궁화의 범국민적인 보급운동이 펼쳐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하면서 국기봉으로 무궁화를 사용하고, 정부와 국회의 표장도 무궁화 도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무궁화 보급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양 회장은 무궁화 전문가답게 민족의 꽃 무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해마다 행사 때면 십시일반 회원들의 회비와 성금으로 무궁화를 전시하며 묘목을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그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 행사비용의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비영리단체에 예산지원을 해 줄 수 없으면, 정부시설물에 대한 위탁경영이라도 하게 해서 그 수익금을 하여 행사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무궁화의 보급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마치 무궁화를 자식처럼 여기며, 평생을 무궁화 사랑과 보급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양 회장은 담소를 나누면서도 중간 중간 눈시울을 붉히는 등 나라 꽃 무궁화에 대한 애틋한 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20년을 한 결 같이 자신을 믿고 따라준 아내에게 이 자리를 통해 고마움도 전하고 싶다는 회장의 얼굴이 잠시 회한에 잠긴다. 그리고는 그 소탈하고 호탕한 표정으로 필자를 배웅하는 양 회장의 모습이 오래토록 필자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