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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주여 보시옵소서.

조회 수 567 추천 수 0 2015.11.18 10:02:59

가복음 191-10

 

우리 모두 복을 비는 마음으로 옆 사람과 "5월 가정의달이 복되시기를 바랍니다. 5월에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5월이 승리의 달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의사가, 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손님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기 병원의 대표적인 환자를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미국 대통령도 자기네 병원에 환자로 와 있답니다. 그 외에도 환자들 중에는 유엔 사무총장과 중국의 황제까지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자기 병원의 환자 중에 하나님도 있고, 우주의 지배자도 있다고 말합니다. 대단한 병원이 아닙니까? 이분이 대체 어떤 병원의 원장이기에 그렇게 대단한 환자들을 모시고 있을까요?? 정신병원 원장입니다. 이들 정신병자들은 자기를 잃어버린 채 망상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미국 대통령인데 안 알아 모신다고 하루 종일 야단치고, 내가 유엔 사무총장인데 안 알아 모신다고 하루 종일 호통을 치는 사람들이 그 환자들이랍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욕을 먹더라도 세금을 많이 걷고, 그 중에서 자기 몫을 챙겨서 치부하며 돈 쌓이는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돈을 많이 쌓았지만 그 속에 행복이나 만족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쌓이는 물질의 높이 만큼 이웃들의 원망과 멸시, 인생의 허무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삭개오가 인생의 막다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큰 변화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앞에 서지 못했던 삭개오가 담대히 예수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표현이 "주여, 보시옵소서"의 고백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의 삭개오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첫째로 예수앞에서 이루어진 영적 소원의 모습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보고 싶어 길로 나왔습니다. 삭개오는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부를 가지고 있어 부족할 것이 없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보기 원했습니다. 키가 무척이나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까지 기어 올라간 것을 보면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삭개오는 자기의 마을에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아 온 삭개오였기에 예수님은 자기를 이해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기 위하여 큰길가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적소원들이 키가 작아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을 때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뽕나무에 기어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간절한 영적 소원앞에 모든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키가 작다고 그냥 물러섰다면 그는 예수를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작은 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애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나올 때에 많은 장애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장애를 다 뿌리치고 삭개오 처럼 예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열심, 간절히 주님을 만나고자 애쓰는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잠언 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날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시편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주님의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둘째로 예수 앞에서 바른 신앙고백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자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습니다. 게다가 모든 유대인들이 자기를 매국노처럼 취급하였는데 예수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너무나 감격한 삭개오는 뽕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그의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집에 유하러 들어온 예수께 "주님" 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삭개오는 예수께서 그냥 인자하신 분이라는 생각 만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집에 유한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단순히 세리와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친구가 되어주는 인심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지자 중의 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만이 오랫동안 자기를 괴롭혀왔던 죄책감과 열등감에서 구원해 주실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삭개오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집에 계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삭개오 처럼 과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교회에 나와 매주일 예배는 드리고 있지만 정말 나의 삶을 통해 예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있습니까? 나의 의지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앞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보다는 예수님을 향한 헌신이 더욱 앞서고 있습니까?

 

 

한 일본인이 신문에 이러한 기고를 하였습니다. "서울에는 교회가 일본 동경에 있는 술집보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시민정신과 도덕심은 일본보다 결코 낫지 않습니다." 심한 비판일지는 모르나 우리 기독교인이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한국의 천만 성도가 삶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나 삶에서는 여전히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 앞에서 변화된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수군거리면서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7)고 말했습니다. 새로워지는 삭개오, 삭개오를 만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사람들은 수근거렸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해서 자기의 집으로 모셔 들이겠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나 그들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보고 수근수근 거렸을 뿐 자기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경하는 자로 남았습니다.

 

 

오늘 전국에 수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전 세계 교인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구경하고 수근수근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하지 않던 사람, 기도하지 않던 사람, 봉사하지 않던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려면 남의 입에 오르내릴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다가 기도하고, 봉사하지 않다가 봉사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이 경건한 태도로 변화되고, 새로운 일을 좀 하려면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봉사하며 일하려면 꼭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근대는 소리가 꼭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수근거리는 자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만나 삶이 달라지는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삭개오는 사랑의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치유되어졌습니다. 사람은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에서 모든 행동이 나옵니다. 따라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도 바뀌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불신앙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불신앙적인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의 말과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불신앙적인 생각이 있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빨리 복음적인 생각으로 치유 받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실패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불신앙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불신앙합니다. 찬송을 부르면서도 불신앙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불신앙합니다. 그러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한 것 뿐 아니라 "주여 보시옵소서"하며 변화된 구체적인 증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며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은 네 배나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얼마 전 리버풀에서 뉴욕으로 가는 샤넌호가 함부르크에서 206명을 싣고 오는 스웨덴 범선과 충돌하는 큰 해상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바다에 짙은 안개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구명정으로 겨우 34명만이 구조되었고 선장을 포함한 172명이 구조되지 못한 채 가라앉고 마는 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게 극소수만 구조되었는지를 알아본 결과 정말 안타까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조되지 못하고 죽은 승객들 대부분이 자신의 재산과 물건을 챙기려다가 죽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온갖 귀중품을 호주머니마다 가득 채우고 어떤 것은 벨트에 묶어 그들의 허리에 차고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결국 재물을 구하려던 승객들은 그 재물과 생명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고 구원의 확신이 가지게 되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무슨 상관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저 사람은 못 배웠다. 저 사람은 가진 것이 없다. 못났다"고 아무리 손가락질 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승리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아무에게도 칭찬 받을 수 없고,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예수 만나 삶이 변화되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머뭇 머뭇거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고 주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부르십니다. 이제 주님 앞에 결단을 하십시다. 그리고 "주여, 보시옵소서." 저의 달라진 모습을 보시옵소서. 저의 변화된 마음을 보시옵소서. 저의 변화된 삶을 보시옵소서. 고백하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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